2010년 7월 29일 목요일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따라하기


이글은 http://cimio.net/591에서 퍼온글입니다.

저는 강의를 할 때 늘 키노트(애플에서 나온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를 이용합니다. 키노트의 슬라이드에 강의할 때 꼭 언급해야 하는 내용, 그리고 학생들이 기억해야 하는 내용을 적어 놓죠. 그런데 강의를 할수록 이런 식의 슬라이드 사용이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우선, 슬라이드에 강의의 핵심이 들어 있다면, 학생들은 슬라이드를 보면 되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겠죠. 그리고 텍스트로 정보 전달을 하려면 슬라이드보다는 인쇄물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즉, 슬라이드를 쓰느니 강의 노트를 인쇄해 나눠준다면 더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프리젠테이션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다룬 Presentation Zen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키노트(또는 파워포인트)를 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더욱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과연 슬라이드의 내용을 어떻게 꾸며야 지루한 프리젠테이션(외국에서는 "Death by Powerpoint"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슬라이드를 잘못 쓰면 프리젠테이션이 지루해지죠)을 피할 수 있을까요?

고민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은 우선 슬라이드에 택스트를 많이 담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강의 노트는 따로 인쇄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슬라이드엔 시각 효과를 줄 수 있는 이미지만 담아야 프리젠테이션이 지루하지 않겠죠. 제가 좋아하는 블로거이자 저자인 세스 고딘은 강렬한 이미지를 담았지만, 그 자체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그림을 보여주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충격을 받고, 그 그림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강사의 말에 주의를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작년에 했던 철학사 강의 슬라이드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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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슬라이드를 만들다 보니, 과거에 bullet points를 써서 마치 교과서 쓰듯 만들던 슬라이드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철저하게 이미지 중심으로 슬라이드를 만들고, 텍스트로 전달하던 내용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설명함으로 전달해야겠죠. 앞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강의를 할 생각을 하니 미리 흥분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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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프리젠테이션의 대가라고 부를 수 있는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에는 택스트가 거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는 제품 사진, 그래프, 숫자 등을 활용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의 슬라이드쇼는 여백의 미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이 그를 집중해서 바라볼 수 밖에 없죠.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을 연구해 보면 프리젠테이션 기술에 대해 배울 내용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다음은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에서 제가 발견한 몇 가지 특징입니다.

1. 슬라이드와 연사의 역할을 분담하라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하는 실수가, 슬라이드를 그대로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슬라이드를 읽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회중에게 읽도록 슬라이드만 띄워 놓고 연사는 사라져버리는 것이 좋겠죠. 이는 슬라이드와 연사가 혼연일체 (?)가 되었기 때문에 슬라이드, 또는 연사가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현상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의 역할과 슬라이드의 역할을 구분합니다. 그는 슬라이드를 통해서는 시각적인 효과만 주고, 중요한 내용은 자신이 전달합니다. 즉, 자신이 솔로 가수 역할을 하고, 슬라이드에겐 반주자 역할을 맡기는 것이지요.

강의를 하다 보면 어느새 슬라이드를 읽고 있다면, 슬라이드와 연사의 역할분담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내 역할은 무엇이고, 슬라이드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겠죠.

2. 슬라이드를 고려해서 프리젠테이션을 작성하라
전에 어느 강사는 사람들이 슬라이드를 쓴다고 하니까 자신도 슬라이드를 쓰려고 강의 노트를 복사해 슬라이드를 만들더군요. 이렇게 만든 슬라이드는 시각적 충격을 줄 수가 없겠죠. 슬라이드가 살려면 프리젠테이션을 슬라이드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슬라이드를 중심으로한 프리젠테이션을 잘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iTunes에서 영화를 공급하겠다고 밝히는 자리에서 영화를 공급할 영화사들의 로고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이런 회사들이 영화를 공급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슬라이드에 나온 영화사들이 대부분 영세 영화사들이라 별 감흥이 없고, '저런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영화라면 인기 없는 영화 뿐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죠. 하지만, 곧이어 그는 헐리웃 주류 영화사들의 로고가 가득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그리고 이런 회사들도 공급한다는군요."하고 별일 아닌 듯 덧붙입니다. 장내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죠. 이는 그가 처음 부터 슬라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프리젠테이션을 구성했기 때문에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예입니다.

3. 다양한 시각효과를 이용하라
스티브 잡스는 슬라이드를 잘 활용하고, 말도 잘 하지만, 슬라이드쇼나 말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시각 도구를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맥용 노트북에 무선 인터넷이 담긴 제품을 선보이며 인터넷이 연결된 상태에서 마술사가 여자를 공중에 띄워놓고 줄에 매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듯 링을 노트북 주위로 흔듭니다. 나중엔 다른 사람에게 그 노트북을 들고 무대 위의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지도록 시키죠 (물론 아래는 쿠션이 깔린 상태). 그러면서 노트북의 움직임을 무선 인터넷으로 전송 받아 청중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지금은 무선 인터넷이 워낙 일반화되었기에 그런 일에 대해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겠지만, 당시로서는 이러한 행동들이 대단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죠. 단지 슬라이드만 의존한다면 이처럼 깊은 인상을 남기기가 힘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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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슬라이드 이외의 시각효과를 이용한 또 다른 경우로는 OS9 장례식을 들 수 있습니다. 보통 OS를 다음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할 때는 "새로운 버전이 잘 팔리고 있다"고 발표하고 끝나는데, 스티브 잡스는 장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관에다가 OS9를 넣는 모습을 보였으니 사람들은 애플이 얼마나 OS9을 잊고 OSX으로 옮겨가기 원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4. 드라마를 연출해라
스티브 잡스 프리젠테이션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프리젠테이션 마지막에 "One more thing"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보통 마지막에 발표하는 제품이 가장 충격적인 제품이기에 사람들은 긴장하고 끝까지 발표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때로는 마지막에 "여러분이 앉은 의자 아래에는 마이티 마우스 교환권이 있습니다" 같은 솔깃한 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긴장을 늦출 수 없도록 프리젠테이션을 구성을 하기 때문에 일반인과 언론이 그의 프리젠테이션을 좋아하기 마련이죠. 많은 드라마나 영화는 처음에는 재미있지만, 나중엔 맥이 풀리고 시시하게 끝납니다. 프리젠테이션이 성공하려면 청중의 마음을 끝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구성을 해야겠죠.

5. 우뇌를 개발하라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따라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성공적으로 그만큼 프리젠테이션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그의 감수성과 창조성의 표현이지, 단지 몇가지 공식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인간의 좌뇌는 논리적이지만, 우뇌는 창의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 중엔 우뇌가 발달한 사람이 많다고 하죠. 한국은 왼손잡이를 박해할 정도로 우뇌와 거리가 먼 사회입니다 (우뇌는 신체의 왼쪽을, 좌뇌는 오른쪽을 담당하죠). 하지만 논리적인 좌뇌 뿐 아니라 창의적인 우뇌를 잘 쓰는 사람이  주도하는 시대가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bullet point별로 요점을 정리해놓고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형적으로 우뇌에 따른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적인 프리젠테이션이 나오려면 평소에도 우뇌를 계발해야 합니다. 저도 우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A Whole New Mind를 읽고 나서 저의 프리젠테이션 방식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프리젠테이션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대에 잘 맞는 삶을 살려면 우뇌를 계발하는 노력을 해야겠죠. 그러다 보면 프리젠테이션 실력 향상은 부록처럼 따라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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