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7일 화요일

사과나무 가든의 어도비

아래의 글은 http://jpthegreenfuse.com/content.php?c_num=292에서 퍼온글 입니다.


다음은 파워블로거 Daniel Eran Dilger의 최신 글 "Chronicles of Conflict: the History of Adobe vs. Apple" 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새롭게 등록된 글이더군여...요즘 애플과 어도비...특히 어도비의 투정이 심각합니다... 이 글을 보니 이해가 되긴합니다...어도비와 애플의 애증관계를 살펴보죠...아...마지막에 가서 딜거의 창작력이...ㅋㅋ 역시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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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애플과 어도비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그래 어도비를 짤라내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 좀더 깊은 역사가 있는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글을 읽어보시라!

창세기 - The Genesis of Adobe

창조주는 Xerox PARC였다. (번역주: 잡스가 처음으로 매킨토시의 GUI 개발 가능성을 엿본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픽 기반의 데스크톱을 최초로 창조했지만 피씨의 완성된 모습은 아직이었고 어도비 가든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가든의 먹구름은 여전히 짙었다. Xerox가 창조의 물줄기를 만들면서 테크놀러지 생명이 움텄다. Xerox 가라사대 아이콘, 윈도우, 이더넷, 스몰토크 그리고 오브젝트 기반의 개발이 이뤄질지어다. $15000짜리 워크스테이션과 비옥한 실리콘 벨리 땅이 있었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과 나무 가든을 일구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그는 Xerox를 설득해 사과 나무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하게 만들었고 Xerox의 기술을 상용화시켜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과 나무는 매킨토시란 열매를 만들었고 Xerox를 위해 일하던 많은 엔지니어들이 실리컨 벨리 땅으로 퍼져나가 PARC의 실험실이 아닌 어느곳에서나 누구나 갖고 놀 수 있는 새로운 기기 개발의 꿈을 펼쳤다.

매킨토시는 곧 일반인들에게 소개됐다. 처음 이 기기를 갖고 무엇을 해야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잡스는 이때 Xerox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세운 어도비란 회사를 알았고 이들이 개발한 컴퓨터 언어 Post Script의 가능성을 보았다. 잡스는 "바로 이거야"라면서 포스트 스크립을 이용한 레이저 프린터의 개발을 이뤄냈고 보통사람들은 매킨토시를 이용해 아름다운 서체와 고해상도 그래픽을 프린트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어도비는 애플에 포스트 스크립 라이센스를 제공했고 애플은 로열티를 지불했다. 레이저 프린터는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최초의 기기였다. 결과적으로 애플과 레이저 프린터는 새로운 데스크톱 출판의 세계를 창조했으며 애플은 킬러 어플을 얻게됐고 소비자는 행복했다.

잡스는 애플을 떠났다. 그리고 NeXT를 세웠고 역시 어도비 포스트크스립의 라이센스를 받았다. 잡스는 한단계 더 큰 발전을 이뤘다.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그대로 똑같이 프린트가 가능한 Display PostScrip을 새롭게 적용한 것이다. 

노예들의 탈출 - An Exodus from the Enslavement to Adobe

데스크톱 출판업계의 봇물이 터졌다. 독보적인 어도비는 매킨토시에 맞춘 포스트스크립 Type1 폰트의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엄청났다. 어도비는 이미 애플 통제에서 벗어났고 이 때문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가 값비싼 어도비의 대안으로 TrueType 폰트 적용을 주문했다. 80년대 말이었다. 마소는 즉각 TrueImage란 회사를 사들여 애플에 포스트스크립 대안을 제시해 라이센스판매를 이뤘다. 어도비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화들짝 놀란 어도비는 애플을 찾아가 애원했다. 제발 날 버리지 말아달라고! 맘 약해진 애플은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을 계속 레이저프린터에 적용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맥과 윈도즈 모두 저렴한 애플의 TrueType 폰트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의 범용성은 더욱 확대됐다. 이후 TrueType은 결국 OpenType가 
됐고 누구도 또 다시 어도비 Type1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도비의 세력 확장 - Numbers of Adobe Applications

87년 어도비는 매킨토시용 일러스트레이터를 창조했고 90년 포토샵을 인수했고 91년엔 프리미어를 출시했다. 모두 맥을 위한 어플이었다. 어도비는 한걸은 나아가 86년부터 맥용 데스크톱 출판툴로 이용돼온 PageMaker와 After Effects('93)의 개발사인 Aldus를 인수합병했고 95년엔 FrameMaker의 개발사 Frame까지 합병처리했다. 모두 맥용 어플과 어플개발사란 점이 일관성이었다.

하지만 어도비는 마소의 왼도즈 가든이 빠르게 피씨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보았고 그 유횩을 견디다 못해 생명과 부를 잉태해준 애플을 배반하고야 마는 죄를 짓고야 말았다. 배반자 어도비는 원죄를 잊겠다는 식으로 더더욱 반애플 정책을 수립했으며 기존 유저들에게는 사용하기에 더 멋지고 좋은 왼도즈로 바꾸라고까지 설파하기에 이르렀다. 

애플은 어도비 주님을 찾아가 빌었다. QuicDraw GX라는 타이포그래피와 프린팅 분야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기술을 선뵀으니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게다가 모델링을 위한 QuicDraw 3D와 메신저기능의 PowerTalk까지 건내주면서 한 간청이었다. 윈도즈 가든과 함께 신의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한 어도비는 애플의 간청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애플을 비웃어 주기까지 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애플의 OS 로드맵은 방향을 잃고 좌절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처절한 시도가 애플내부에서 시작됐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개발한 NeXT를 손에 들고 재림했다. 애플은 잡스에게 "당신만이 우리의 메시야입니다"라 했고 잡스는 받아들일 수 밖에없었다.

지휘권을 다시 잡은 잡스는 지체없이 어도비를 찾아갔다. NeXT와 애플을 묶은 프레젠테이션을 소개했다. 어도비는 잡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돈만 넉넉히 내놓는다면 너희들의 오에스에 어도비 어플을 포팅해주겠다였고 덧붙여 Display PostScript 라이센스에 대한 엄청난 가격을 책정했다.

잡스는 마크로미디어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오에스의 지원요청에 대해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절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잡스와 애플은 카본이라고 불리는 레거시 API를 만들어 기존 맥용 어플들을 스스로 포팅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Display PostScript을 포기하고 어도비에서 오픈 소스로 공개한 PDF기반으로 새로운 이미징 모델을 완성했다. 애플은 더 이상 말도안되는 고가의 Display PostScrip 라이센스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잡스는 Mac OS X개발에 5년을 소모한뒤 개발자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사과나무 가든에 당신들이 원했던 모든것을 준비했다. 약간의 단순 카본화 작업만 더한다면 당신들이 사용했던 기존 코드를 그대로 이용해 당신들 제품을 우리의 새로운 오에스에서 네이티브로 돌릴 수 있다. 2001년 마크로미디어는 카본화시킨 Freehand를 출시했고 마소 역시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카본화시킨 맥용 오피스를 내놓았다. 하지만 어도비는 꿈적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어플을 수년동안 의도적으로 카본화시키지 않고 버텼다. 

2002년 어도비는 경쟁제품 QuarkExpress와 대적할 InDesign을 맥용을 출시했다. 메이저 소프트웨어 제조사중 두번째로 가장 늦게 애플의 새로운 OS를 위한 프로그램 출시였다. 같은해 어도비는 맥용 AftefEffects와 GoLive를 내놓았다. 하지만 아크로바트나 포토샵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주요 어플들은 아직이었고 2003년 CS 패키지를 발표하면서야 겨우 맥용으로 일부 포함시켰다. 하지만 같은해 어도비는 맥용 프리미어와 FrameMaker를 취소시켰고 모든 제품 개발을 윈도즈화에만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도비는 2005년 맥 사용자들에게 CS와 CS2를 판매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마크로미디어가 어도비로 합병된게 2005년의 일이다. 애플은 당시 어도비를 다시 찾아가 간청했다. Mac OS X를 인텔칩으로 포팅완료했고 2006년엔 제품이 나오니 함께 가자고 애원한 것이다. 어도비는 잡스의 키노트 스테이지에까지 함께 출연했으며 양사의 장미빛 관계회복이 엿보였다. 하지마 그로부터 1년이 넘어 어도비는 CS2나 MacroMedia Studio 8의 인텔맥 포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또다시 애플의 등에 칼을 꽂았다. 어도비는 CS3를 선봬면서야 맥킨토시 지원을 실현했다. 2007년의 일이다. 애플의 뿌리깊은 분노는 이제 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맥을 "x"처럼 여긴 어도비 - Adobe Judges Mac Ruthlessly

어도비는 마크로미디어의 플래쉬를 재포장했다. 4명의 풀타임 엔지니어를 동원해 윈도즈용 플래쉬 플레이어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맥버젼을 만드는 일은 단 한명의 엔지니어에게만 맡겨졌고 것두 맥전문가가 아닌 엔지니어였다. 이 때문에 맥용 플래쉬 플레이어는 항상 불안정했고 맥에 출동을 일으키는 넘버 원 이유를 제공했다. 또 CPU를 100%나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애플을 비난했다. 애플은 더 화가났다.

애플 내부 엔지니어의 말을 빌려보자. "코드 한줄 쓸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맥버젼 플래쉬의 오작동이 머리통 빈 초보자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겨우 두달전에서야 어도비가 이런 문제를 고쳐 놓긴 했지만 이를 위해 우리는 수년동안 고쳐달라고 졸라야했다."

결국 너무나 형편없는 플래쉬 대안을 위해 애플 스스로 대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스노우 레퍼드에서 사파리는 플럭인 기능을 독립적으로 작동되도록 디지안됐고 플래쉬 클래쉬가 벌어져도 사파리가 다운되지 않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어도비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플래쉬는 공짜였고 어도비는 플래쉬를 갖고 윈도즈 운영체제에서 돈을 벌 목적이었기 때문에 CS 시리즈의 맥용 판매만 걱정했을 뿐이다. 마소의 맥 오피스 전략과 똑같은 것이었다.

아뿔사 아이폰! - Lamentations over iPhone

애플에서 아이폰을 소개한게 2007년. 보기에도 멋진 기기였다. 물론 어도비도 눈치챘다. 지구상의 인터넷 환경에서 HTML을 쥐략펴략하는 플래쉬를 아이폰에 이식시키길 간절히 소망했다. 물론 애플의 답은 "No"였다. 데스크톱 버젼에서도 불안하고 버겁기만한 플래쉬를 어떻게 모바일에서 사용할 것인가가 이유였다. 또 플래쉬 라이트 버젼은 덜 떨어진 것이라서 사용자가 좋아할리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어도비는 아이폰용 플래쉬가 조만간 나올 것이며 이를 위해 애플과 협력 중이라고 떠들었다. 개발자들은 어도비의 거짓부렁에 속아 죽치고 기둘려야했다.

그러던 중 아이폰 사용자들은 이미 플래쉬를 잊어먹었다. 필요성을 못 느낀것이다. 이미 지구상 모바일 인터넷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아이폰 사용자들이었다. 어도비는 걷잡을 수 없는 패닉에 빠졌다. 플래쉬를 이용해 모바일 라이센싱으로 돈을 벌 계획이었는데 모두 일그러져버렸다. 당황스럽고 곤혹스런 상황에 놓인 어도비는 그제서야 자신들의 가든에서 발가벗겨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스티브 잡스는 이미 아이폰 가든에서 어도비를 추방한 것이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소용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언제 망할지 모를 공포와 허기진 밤을 지새워야하는 신세가 되버린 것이다. 안드로이드와 WebOS 그리고 극히 일부 MS 모바일 어플에 제공되는 모바일 플래쉬에서 쥐어짜낸 과실물이래봤자 목구멍에 기척도 가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애플은 더 강한 "No Flash"를 발표했다. 어도비 플래쉬 플랫폼의 노예가 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폰에서 플래쉬가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플래쉬를 대체할 더 좋은 HTML 5가 방향이라고 선언했다.

어도비의 선택은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싸잡아 비난하는 일뿐이었다. 불을 지피고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할 수 있는 짓거리는 다해보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작 잡스의 귀는 다른곳에 가있었다. 그래서 나온게 어도비의 또다른 독자적 플래쉬 가든이다. 플래쉬 전문가를 끌어안고 플래쉬 게임을 모아 앱스토어를 점령하고 CS 5를 내걸어 플래쉬를 거부하는 잡스와 애플에 한방 먹이겠다는 플랜이었다. 

그러자 잡스는 아이폰 OS 4.0 SDK의 3.1.1 조항을 내걸었다. CS 5는 이제 아이폰 가든에 발도 내밀지 못한다.

어도비 묵시록 - A Revelation of Adobe 

어도비가 본 지옥의 묵시록에는 4마리의 말이 등장한다. 백마탄 스티브 잡스가 그 중 하나. 그는 정복자다. 아이폰은 붉은말을 탓고 스마트폰 시장을 휩쓸며 정쟁사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세번째는 아이팟 터치를 태운 검은 말이다. 아이튠스 음원을 자원으로 너무나 많은 앱을 갖고 있어 경쟁사들의 모빌 플랫폼을 아사지경으로 몰아간다. 마지막 네번째는 색이없는 말이다. 아이패드를 태우고 있다.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타블렛을 말려죽이고 슬레이트에 역병을 몰고 온다. 이 네마리중 플래쉬를 사용한 말은 하나도 없다.

공포에서 깨어난 어도비는 자신들이 향유했던 독점적 가든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수년전부터 잡스가 그렇게 간청했던 것처럼 어도비는 이제서야 자신들의 새로운 앱을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용을 만든다 물론 코코아를 통한 크리에티브 수트 포팅이다. 또 라이트룸의 지속적인 맥지원을 하게되고 그제서야 돈도 벌게된다. 

어도비는 HTML 5의 개발 툴을 만들기 시작하고 적절한 시장 가격에 이 상품을 선보일 것이다. 물론 크로스 플랫폼도 나올것이며 새로운 애플 가든의 사람들이 즐거워할 것이다. 어도비의 죽음은 스스로 재탄생을 위한 것이고 이제 애플과 사이좋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어도비에게 "고맙다"라고 말하지만 어도비는 "아닙니다, 저희가 고맙습니다"고 답할 것이다. And they all lived happily ever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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